착한 카리부? 흥!

기분 좋은 이벤트 하나 참가했다가 벌어진 헤프닝에 웃기는 사건이 있어 잠깐 얘기 해볼까 한다.

사건 개요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2/26#13:54:04
1. 착한 카리브(http://me2day.net/cariboukorea) 김연아 이벤트 시작
이벤트 문구는 "김연아선수 금메달 축하메세지를 핑백으로 날려주세요. 세계신기록 228.56점 기념으로 선착순 228명에게 카리부커피 리얼초콜릿음료쿠폰을 1장씩 쏩니다."

2. 엽기민원(본인) 당첨 쪽지가 안보내지나, 그렇다고 친구를 맺지 않으니 그냥 메일 주소를 알려줌(미투데이는 친구를 맺어야 쪽지가 보내짐)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2/26#15:11:24
3. 아무 말이 없어 다시 한번 얘기함 친구를 안맺으니 이메일을 알려줌

http://me2day.net/yupmin/2010/03/03#17:35:11
4. 이벤트 쿠폰 메일을 왜 안주는가에 대해 질의

5. 착한 카리부 '엽기민원님 친구해야 줄 거예요… 친구해요.'라고 함에 다시 엽기민원(본인)은 기업 미투데이랑은 친구안한다, 이제와서 쿠폰을 안주는 것은 부당하다고 언급

6. 엽기민원(본인), 착한 카리부 '기업', '회사 직원'이 아니라고 해서 어째서 기업 미투데이/블로거가 아니냐고 재차 물어봄

7. 착한 카리부가 극구 부인하길래 엽기민원이 '회사 바로 옆이니 찾아간다고 함' 장난침

8. 착한 카리부 화를 내고, 다음의 링크를 참조해서 자기가 '착한 아주 착한' 카리부임을 재차 확인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3/03#19:40:44

나의 기본전제는 다음과 같다.

공정무역을 지지한다.
기업 SNS 및 블로그는 나쁘지 않다. 잘했으면 좋겠다.

좀더 고객과 가까운 거리감을 가지며, 서로 상호 소통하는 활동은 기업 및 고객 둘 다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다만 기업 블로그/SNS의 경우 개인 블로그/SNS보다 더 투명성(더 많이 요여주고, 더 적게 보여주고뿐만 아니라)에 기본을 둬야 한다.

'착한 카리부'처럼 혹시나 기업의 이미지 혹은 그 자체를 자처하는 사람하면서 공식적으로 내는 의견이 기업의 의견이 아닐경우는 어찌 할텐가? 혹시 그가 카리부란 이름을 달고 이벤트를 했는데, 그것이 부당한 측면이 있다면 어쩔텐가? 개인의 문제인가? 기업의 문제인가?

기업 이벤트를 할때(공짜가 아니라) 뭔가 주고 받는것이 분명 있겠지만, 그것은 처음에 고지 되어야 한다. 이벤트 문구에 미투친구를 맺어야 한다는 고지도 없었고, 김연아의 우승을 축하하길래 주변 친구들까지 이벤트에 참가하라고 했었다.
근데 당첨되서 이메일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미투친구를 맺지 않으면, 쿠폰을 안준다는 건 도대체  어디서 써먹는 억지인가?

그깟 음료하나에(이렇게 시간을 들여 글쓰는 것도 나도 웃기고..참) 내가 관계를 팔생각이 없음을 몇번을 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첨된 이벤트를 이행하지 않는 의지는 어떤 뜻인가? 그리고 그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을 회사 카리부 커피는 알까? (나는 물론 당첨된 이벤트를 취소했다.)

게다가 기업만이 할수 있는 할인 쿠폰을 마구 뿌리면서, 자신은 기업 미투데이/블로거가 아니라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카리부 커피 홈페이지 전면에 공식 블로그/미투데이/트위터 라고 되어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 미투데이가 아니란다.

공식 사이트에 있는 공식 링크들

공식 사이트에 있는 공식 링크들



일주일에 이벤트를 3번이나 한다.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3/02#18:09:00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2/26#13:54:04
http://me2day.net/cariboukorea/2010/02/23#16:10:36

백번 양보해서 블로그 글(http://blog.naver.com/caribou_kor/60055772435)처럼 자원봉사로 카리부 기업 미투데이를 한다 치자. 그렇다면 이 분이 받은 카리부 커피 회사로부터 양도 받은 카리부 쿠폰들, 즉 당연히 할인이라는 금액적 이익이 있는 유가증권은 카리부 사가 이 분에게 준 혜택과 이익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카리부 커피를 지지하는 순수한 '착한 카리부' 지지자라고 항변해봐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카리부 커피의 할인권을 미투데이 관계와 주고 파는 관계일뿐이다.

착한 카리부 미투데이(http://me2day.net/cariboukorea)에서 자회사 '불고기 브라더스 이벤트'를 홍보하면서, 자신이 기업 미투데이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누가 믿을까? 이 문제는 그 개인의 문제일까? 기업의 잘못된 SNS 미디어 홀보정책일까?

나도 공정무역을 지지하고, 알고지내는 귀농한 선후배도 꽤 된다. 농민이 노동한만큼 그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 또한 지지한다. 100미터 안에 카리부 커피점이 있으면 바로 앞에 다른 커피점이 있더라도 카리부 커피를 마실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자기자신을 '착하다'라고 자칭하는 사람은 믿지 않는다. 고로 나는 '착한 카리부'미투데이/블로그/트위터를 믿지 않는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10/03/03 23:52 2010/03/03 23:52
, ,
Response
A trackback , 2 Comments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83

요즘 이런 저런 화끈한 울 회사 관련 글들이 불 붙고 있다. 비판의 수위는 개념치 않는다. 언제나 정도만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면 같이 서로를 비판하거나, 그렇게 비판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다. 변증법적으로 변화발전하는게 블로그 스피어다.

근데 요즘 몇 분들은 아주 소설을 쓴다.

어떤 블로그(?)가 '다음블로그뉴스 추천을 조작했다'고 근거없는 설을 올렸는데...

이런 팩트의 왜곡에 대해 회사대표가 그에 대한 답변을 했음에도...

MBC 스페셜 '최민수,죄민수, 그리고... 소문' 과 태터앤미디어

자신의 해석 실수 인정하지 않는다.

다음블로그뉴스는 로그인을 하고 혹은 안하고 추천을 누를 순 있다. 로그인을 하고 누르면 추천을 누른사람에 정보가 같이 뜬다. 추천이 11이었을때, 5명의 누른 사람 정보가 보인다면, 6명은 로그인 안하고 추천한 사람이다. 그러니깐 누른 사람을 알수가 없다. 다만 아이피가 같거나 하면 두번 누를수가 없다.

근데 어떤 블로그(?)는 그것이 아마 삼성핸드폰 마켓팅을 한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추천을 했다고 써버렸다. 시덥지 않은 글에 6개의 비로그인 추천이 있을수가 없다면서...

재미있는건 그 어떤블로그(?) 시덥지 않은 그 글(추천수를 조작했다는)에는 10개의 추천이 있었다. 그리고, 7명의 로그인한 추천과 3명의 비로그인 한 추천이 있었을때, 당신의 글은 시덥지 않으니 3개는 아마 당신이 PC방을 돌면서 자추(자기추천)을 했다고 내가 자의적으로 주장한다면 그 사람은 뭐라 대답할까?

또한 다음블로그뉴스 비로그인 추천이 변경된 것이 언제인데...이제와서... 그것이 회사가 욕먹을 이유라니...

또 파트너들이 겨우 '자추'나 할정도로 한가한 사람들이 아니다. 직장에서 빡세게 일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 분들도 블로그계에서는 오랫동안 블로그질들을 하셔서 인위적인 붐업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신 분들이다.

이렇게 답변하면, 회사직원들이 추천을 눌렀다고 할까 싶다.
근데 어떡하지 돈주고 회선을 더쓰는 공유기라, 아이피가 하나다. 진짜 인위적인 추천을 하려고 했으면 바쁘신 파트너 분들 시키겠냐? 고정아이피 신청해서 우리가 누르지.

근데 중요한건 오늘은 다른 블로그가 그 사실을 받아서 조작했다고 글을 써버렸다. 다른 어떤 블로그 가면, 기정사실이다. 추측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다.
http://blog.naver.com/ldj0896/70042453507

삼성 햅틱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삼성이라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이 만든 고가의 핸드폰. 작년 하반기 이 핸드폰에 대한 사용기들이 블로그를 도배하게 된다. 말그대로 물량공세이다. 사실 그 이전에도 얼리어댑터라는 이름을 내세워 돈받고 포스트 하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블로그의 특성상(이건 조금 뒤에서 다루겠다.) 사람들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갔다. 그런데 블로그 스피어 대표적으로 다음 블로그 뉴스에 그놈의 삼성 햅틱, LG엑스노트 관련 포스트들이 IT주제에서 상위권을 독식하게 되니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상업화에 대해서 별로 생각하지 않다가 온갖 부조리들이 다 들어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다음 블로그 뉴스에서 인기글 만들기를 들수 있다. 알고 보니 태터 앤 미디어 라는 회사가 있는데 회원들 끼리 인기글로 추천해서 올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들끼리 다음 블로그 뉴스 IT부문을 다 해먹은게 탄로가 나게 되고 태터 앤 미디어는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게 된다.
이렇게 매도되는 것이다.

블로그가 언론이면 언론중재위원회에 중재라도 하겠건만... 이건 뭐 방법이 없다. 이렇게 퍼진거 하나하나 대응하기도 힘들고...

제발 자신의 포스트에 쓰는 글에 책임감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딴지일보에서 일하면서 떡밥들 많이 던졌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팩트는 다 확인하고 글을 썼다.

블로그가 미디어적 위치를 오를수록 더욱더 자기 채찍질을 가해야 할 시기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9/02/19 00:40 2009/02/19 00:40
Response
No Trackback , 3 Comments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54

답답하다. -_-

아래 인터넷 강의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고환율 정책으로 주식폭락되고, 주식폭락의 지금 시기에 연기금으로 땜방하고, 이건 시바 우리 돈을 외국인에게 그냥 갔다 바치고, 결과적으로 강만수, 이명박 정권이 싸논 똥을 우리가 치워야 할판이 되는 것이다.

아래 강의 간단요약

1-1. 인위적 고환율 정책 -> 대기업 중심의 수출 증대 -> 경제 활성화/선순환이 일어날것이다(기획재정부 예상)

그러나 실상은...

1-2. 인위적 고환율 정책 -> 수입물가, 국제가격이 좌지우지, 원자재, 곡물, 석유 상승 -> 물가 상승 초래

그러므로 물가를 잡기위한다면서 고환율 정책은 2MB 경제 정책의 허구성을 폭로

2. 물가상승 -> 소비/투자 위축 -> 생산 위축 -> 내수위축 -> 고환율정책(반복) -> 스테그 플레이션

3. 석유가격인상(오일쇼크에 취약한 우리나라) -> 주식이 폭락 -> 외국인의 주식 매도(달라의 수요 증가) -> 환율이 상승(달라 매입)

4.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인위적 저환율 정책(달라 매수) -> 외환보유고 낮아짐, 환율 하락으로 인한 외국인의 주식 매도 -> 주가 개박살 -> 외환보유고를 외국인들에게 비싼가격으로 가져다 받침

5. 주가 개박살 -> 정부의 연기금으로 주식투자로 주가하락 막음
이런 현상의 결과는
  1. 인위적 고환율 정책이 물가상승과 외환보유고를 고갈시키고, 그 고갈액을 연금으로 돌려막기
  2. 부동산 시장의 침체, 내/외적인 요인으로 장기적인 자산위기로 부동산 경기 악화 및 순환
  3. 장기적인 이런 반복적인 경기악화로 스테그 플레이션, 살기 어려워 진다. 2차 IMF 위기
가 되는 것이다.

70,80년대 고환율 정책을 쓰는 강만수를 장관으로 앉히는 이명박도 참 사람이 엉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아무튼 맨날 헛갈리는 현 경제상황을 잘 이해했다.
재미있는 것은 요즘은 이런 인터넷 강의로 교육으로 정치 / 경제를 배운다는 것이다. 허참..
아무튼 꼭 시간내서 보길... (다음 글도 볼만함 : 이제야 한국경제 위기를 알아차린 듯. 그러나 늦었습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한다. 이 딱 꽉 물어야 겠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8/07/10 22:04 2008/07/10 22:04
, ,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45

역지사지라고, 남에게 바라는 만큼 자신도 그만큼 모법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제가 보기에는 24시간 1교대로 대통력직으로 수행하면 24시간 2교대의 시대도 금방 올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정책 발표는 영어로 해야겠죠?
李당선인 "모든 기업 24시간 2교대로 일하면 좋겠는데"

특히 "앞으로도 파업 안 했으면 좋겠다"며 가스와 전기도 끊는 총력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노총을 압박하고 나서 향후 노·정관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 당선인은 이날 GM대우 생산라인을 둘러본 후 즉석에서 가진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대한민국 모든 기업이 24시간 2교대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과거 청년시절 인력시장에 나간 일을 회고하며)그때는 아침에 나가면서 일자리가 보장 안되니 월급이 적어도 매일 출근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에 들어와서 개개인이 내가 일하고 월급을 받지만 아무리 하급직 노동자라도 조직이 잘 돼야 자기도 잘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회사가 잘되니까 (GM대우는) 복직도 시키고 추가로 고용도 하는 것 아니냐. 5년째 파업 안하고 있는데 앞으로도 파업 안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또 서민을 위한 정책을 소개해 달라는 한 직원의 질문에 "일자리가 있으면 서민이 아니다. 고정된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서민"이라며 "부자들은 정책을 안 세워도 잘 해나간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서민정책"이라고 말했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8/02/01 14:25 2008/02/01 14:25
,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34

누구들은 저항하는 것들을 노래하는 것들은 '민중가요'라는 호칭을 준다. 뭔가 보통사람들에겐 낮선 단어... 근데 돌아보면, 꼭 그렇지 않다.

요즘 CF에서 자주 들리는 Queen의 Under Pressure.
"압제의 밑에서" 란 다소 과격한 단어를 노래제목으로 가지고 있는 이 멋진 노래는 1980년 영국의 사회상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와야 하는가에 얘기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퀸이 단순히 유명한 밴드이기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노래의 원제 제목은 People on Streets ( wikipedia Under Pressure ) 이었단다.

가사해석 : 이규훈님의 가사 검열 [가사 검열] Queen - Under Pressure

파격적인 뮤직비디오 감상을 하시라.


요즘 우리가 막다뜨린 2MB시대.
옛날의 언어가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써의 문화적 저항이 필요한 요즘이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8/01/12 22:45 2008/01/12 22:45
, ,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30

홍세화선생님의 분당론이 좀 황당하긴 하지만, 내 수준은 딱 이정도?
서로 맞지 않다면 분당도 나쁘지 않지만, 아직 아래의 산적한 내용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재 분당하면 모든게 좋아질까? 특히 분당을 시켜야 할사람들은 대부분의 문제의 핵심들을 유발시키는 사상적 순결주의자들이 아닐까? 당원게시판에 저런 글을 볼때마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링크 : http://comm.kdlp.org/index.php?jact=art_read&art_no=550179
제목 : 자주파 당원도 분당고민합니다
글쓴이 : 인파이터

어제 당게시판에 몇 년만에 글을 써놓고 잠도 못잤습니다
워낙 소심한 성격이라 당게시판에 글을 쓰는 일이 굉장히 부담스럽니다
또한 제대로 활동 한 번 해 본 적 없기에 자격지심도 상당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한 마디 의견을 다들 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먼저 몇 가지 중요사항을 말씀드리고 분당을 논하겠습니다. 정리해서 글을 쓰고 올리려 하다가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어내려가겠습니다

1. 지금은 조승수 당원 징계를 운운할 때가 아닙니다

당의 기강과 건강한 질서 차원에서 보자면 조승수 당원의 발언과 행위는 명백한 반당행위입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동당의 상황은 기강 따위를 세울 처지가 아닙니다. 분당을 고민하는 마당에 기강 운운은 한가로운 소리입니다. 또한 분당까지 고민하는 당원이 적지 않고 박노자, 홍세화, 조승수 등등의 분들이 아무 고민도 없이 그런 말까지 하실 분들이 아닙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그렇게 말했겠습니까? 기존의 당질서를 지키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신당을 창당하는 마음으로 현사태를 대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전진정파의 행태는 용납하기 힘듭니다. 조승수 당원은 적어도 당당히 자기 견해를 표현하고 선거운동을 안했지만 전진의 행태는 솔직하지도 못했고 음모적입니다. 비도덕적입니다.

2. 자주파는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합니다

저 자신이 한 때 자주파 지도부를 세우기 위해 당게시판에서 열심히 활동한 바 있습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은 "김창현 당원과 이용대 당원에게 기회를 주자"였습니다. 기회는 주어졌고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혹자는 일부세력의 분파주의 등을 들면서 책임을 전가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 정파 갈등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자주파에게 주어진 기회는 그 갈등까지 극복해서 획기적 당발전을 이루고 실천적 결과로 모든 부당한 비난을 잠재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주파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지도부를 책임진 입장에서 다른 누구를 탓해서는 안됩니다. 전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지휘부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물론 이는 모든 자주파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지도급에서 책임진 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자주파는 물러나거나 입을 다물거나 당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그것은 가당치않은 연좌제입니다. 책임소재를 공정하고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창현 당원이 비례대표로 거론되는 것은 반대합니다.책임지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권영길 후보를 문제삼는 것에 대해 반대합니다.

후보 한 명 바뀐다고 해서 생기지 않을 문제였다면 역설적으로 민주노동당은 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보가 누구였더라도 대동소이했을 거라고 봅니다. 후보를 문제삼으면서 종북주의와 분당을 운운하는 분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야 합니다. 전술적인 문제와 근본문제를 동일시하는 의도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과연 그러한 부당논리를 펼치는 것에서 비인간성을 느끼지는 않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
이제 분당문제에 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자주파도 분당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저 자신부터 과연 정파연합당이라는 게 가능한 것인지 수없이 회의했습니다. 당활동이 꺼려지는 데에는 솔직히 이 부분도 큽니다. 저는 학생운동 이후로 더 이상 소모적인 정파 갈등으로 인간성과 정신을 갉아먹히는 일을 당하고 싶지 않습니다. 정파 갈등 문제로 저는 인간관계에 치명적 상처를 입은 후로 모든 인간 관계를 두려워하게 된 사람입니다.
사람을 사귀거나 좋아함에 있어서 굉장히 적극적이고 낙관적이었던 스무살의 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극심한 정파 갈등이 그칠 줄 모르는 당을 보면서 사실 근처에 가기도 싫었습니다.
자주파를 욕하는 분들은 정파적 폭력을 자주파에게서만 느꼈겠지만 자주파인 저로서는 그 반대의 경우도 느낍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해왔습니다. 과연 이대로 당이 유지되는 것이 옳은가하고 말입니다. 반민족과 반북을 신념으로 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옳은가하고 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주파도 진지하게 분당을 고민해야 합니다. 몇명 징계하고 출당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심상정 의원이 언젠가 말한 것처럼 제정파를 녹여내는 용광로로 당을 만들 수 없다면 굳이 지지부진하게 당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기왕에 제기된 분당 고민이라면 자주파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대충 봉합하고 지나갈 일이 아닙니다.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분당밖에 답이 없다면 분당해야 합니다. 반대로 분당은 절대로 답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2. 분당고민의 첫번째 화두-이북과의 관계 설정입니다.

종북주의가 문제라고 합니다. 저는 이 주장에 반대합니다.

첫째, 민주노당의 문제는 종북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박노자씨도 잘 지적하셨습니다. 박노자씨는 좌파민족주의(종북주의와 다른 개념이지만 비슷한 세력을 지칭)를 청산하는 문제는 민주노동당 혁신의 시작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문제가 산더미처럼 있다는 것이지요. 정작 종북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하시는 박노자씨나 홍세화씨도 독도사건이나 북인권 및 핵무기 비판문제, 당원정보유출해위 등의 몇 가지 사례밖에 들지 못합니다. 이 사례들은 상징적일 수는 있으나 민주노동당 침몰의 결정적 근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둘째, 종북주의(아마도 북조선 노동당 지지 입장)을 문제삼는 것은 남의 신앙을 문제삼는 것과 똑같습니다. 유물론적 입장에서 유신론자는 진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교신자도, 기독교신자도 진보적 실천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인들과 연대함에 있어서 부처를 섬기거나 예수를 섬기는 것을 문제삼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 실천이지 머릿속 신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사파가 문제라면 구체적 실천행위를 일일히 비판하면 그만입니다. 그들의 머릿속을 뜯어 고치려 하는 것은 반인간적 폭력행위입니다. 개인적으로 그가 조선노동당을 지지하든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든 상관할 바 없습니다. 그의 정치적 실천이 그로부터 비롯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정치적 실천 문제를 근본사상으로부터 환원해내려는 것은 관념론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실천속에서 사상이 혁신될 수 있다는 진보적 신념에 반합니다. 모든 것은 실천으로 말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사파들이 여전히 반한나라당 연대에 미련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서 그런 실천행위를 한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근절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게 다 주사파라서 그래"라는 식으로 환원하는 것은 관념론일 뿐입니다.
우리 운동에서는 그런 공리공담의 사상투쟁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상투쟁도 실천을 매개로 해야지 실천과 동떨어져서 진행해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는 남습니다.
주체사상을 신봉하건, 조선노동당을 따르건 문제삼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의 당원이라는 것이고 민주노동당의 당원으로서 가지게 되는 역할에서 이북에 대한 현실적 입장을 어떻게 취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대중과 양심세력이 북에 대한 일방적 추종 혹은 지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중추수주의가 아닙니다. 남한의 명백한 현실조건에 대한 주체적이고도 과학적인 고려입니다. 남한대중의 감수성과 눈높이를 무시하고서 대중정당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의 당적 실천에서 대북관 때문에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자주파가 공식적으로 가져야 하고, 실제로 가지고 있는 대북입장은 평화통일의 파트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한을 이북식 사회주의로 만들자거나 이북사회주의의를 지지엄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통일을 고민하는 입장은 적어도 실천적으로 제시된 바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는 사람을 뭐라 할 수는 없고, 뭐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것이 당적 실천이 되지 않으면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실천에서 종북주의를 보인 적이 없다 하더라도 종북주의 비난을 무조건 거부하고 볼 일은 아닌듯 합니다.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조선노동당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이북을 완벽한 유토피아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주체사상도, 이북 사회주의도 역사적 산물입니다.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은 역사적 한계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비판지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이북 사회주의의 정수를 계승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남한에 그대로 이식하는 형식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철저히 남한의 구체적, 주체적 조건에 근거해서 이북 사회주의가 가지는 한계점을 인식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이북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 문제는 많은 당원들과 대중들이 주체사상파를 무뇌아쯤으로 생각하고 비판의식도 없고 대화와 토론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부당하고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도록 한 데에는 주체사상파도 책임이 있습니다. 과연 남한의 구체적, 주체적 입장에서 이북사회주의를 비판적으로(계승과 혁신의 관점으로) 연구하고 발표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해이든 억측이든 이 문제를 풀 책임은 주체사상파에게 있습니다.
이북사회주의는 토씨 하나 바꿀 필요없이 남한에 이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그런 생각은 주체사상과도 인연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한 이 말에 대해서 항간에는 사상적 순결성이 의심된다느니 하는 말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런 순결성은 지키고 싶은 사람만 지키면 됩니다. 민주노동당에는 필요없는 순결성입니다. 당적 실천으로만 제기되지 않으면 그런 순결성도 문제되지 않습니다만, 그런 이상한 순결성이 아니라면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고민의 결과물이 필요합니다. 만약 이상한 순결성을 지키고 민주노동당에서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분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분당하지 않는 것은 음모적 작태일 따름입니다. 그런 세력이 있으면 정치적으로 솎아내면 되는 일이지 분당을 한다는 건 빈대잡자고 집태우는 격입니다.



3. 모든 근본주의, 순결주의와 결별해야 합니다.

종북주의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순결주의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근본주의자, 환원주의자, 순결주의자와는 본래 대화와 토론이 되지 않습니다. 자주파 중에도 분명히 근본순결주의자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파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이 부분은 홍세화 당원도 지적했습니다. 평등파 일각에서도 사회주의적 원칙 운운하며 북유럽 사민주의를 깔아뭉개곤 합니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본주의적이고 관념적인(사회주의 원칙 어쩌구 저쩌구) 공리공담에 불과한 논의를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홍세화 당원도 근본주의의 오류에 빠져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머릿속 사상, 종북주의를 문제삼는 것, 문화적 태도를 문제삼는 것은 근본주의적 오류입니다. 자주파라고 해서, 주체사상파라고 해서 비이성, 비합리에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은 하나의 사상적 근원으로 사상전반을 일반화하는 오류입니다. 아마도 근본사상에 의해 사상전반이 완벽하게 통일되어 있는 인간은 초인이라 할만큼 드물 것입니다. 사회주의를 신봉한다는 사람은 과연 자본주의적 사상경향이 없는지, 자유주의자라는 사람은 과연 반자유주의적 경향이 없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물론 모든 경향을 다 인정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판단제한선은 필요합니다. 그것이 홍세화 당원이 스스로 말한 신자유주의 반대, 한미FTA반대 등등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머릿속 사상과 문화적 태도를 근거로 척결과 청산, 단절을 주장하는 것은 스스로 제안한 진보의 기준과 모순됩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숭배하든 말든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FTA를 반대하는 것 아닙니까? 부처를 숭배하든 예수를 숭배하든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반대, FTA반대 아닙니까? 북한을 추종하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라면 그 어떤 것도 진보로 볼 수 없다는 생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지요? 오직 구체적 실천, 정치적 실천으로 평가하시기 바랍니다. 근본사상을 도려내려고 하지 마시구요.
당내에서의 패권적 행태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학습부족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대안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성격 나쁜 것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머리 나쁜 것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인상 더러운 것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짜장면 배달 늦는 것도 주사파라서 그렇고, 하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4. 민족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필요합니다.

종북주의 문제와 민족모순문제를 동일시하는 경향, 한국사회의 민족모순문제를 인정하는 것을 종북주의와 한묶음으로 취급하는 경향은 인정할 수 없습니다.

주사파와의 단절을 주장한 김규항씨 또한 "계급의 체로 걸러진 민족"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민족모순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국주의의 문제와 분단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모조리 부정하는 민족허무주의는 전혀 실천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족문제를 백안시하던 일부 평등파 또한 한국사회에서 대중정당을 책임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현실적으로 민족문제를 고민할 거라고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종북주의 청산 운운하면서 민족허무주의로 나아가게 되면 비현실적 노선으로 실패를 면치 못할 운명만 남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박노자씨의 "좌파민족주의와의 단절"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노자씨는 '좌파민족주의=주사파'라는 이상한 등식을 사용하는 논리적 오류를 보입니다. 아마도 평등파에서 더 적극적으로 민족문제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 자주파에게 그 과제를 밀어두실 건가요?


5. 하지만 당면 실천의 중심은 통일이 아니라 비정규직 해결입니다

제가 보기에 당내 지도급 인사중에 통일 지상주의자는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당원들이 그런 오해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대선 슬로건으로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내건 것은 패착입니다. 물론 취지는 이해합니다. 궁극적으로 만들어야 할 국가의 새 형식을 말한 것이지요. 민생과 민주주의가 해결되는 내용을 담는 형식 말입니다. 문제는 형식만 내세우고 내용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형식은 내용의 실천적 실현을 통해 구성됩니다. 내용없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의 형식은 통일지상주의로 보이기에 딱 좋습니다.
지금 민중의 요구는 그런 형식의 제시가 아닙니다. 민생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내용의 제시, 피부에 와닿는 구체적 대안입니다.
지금 민주노동당에서 관념적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내용을 가장 실천적, 모범적으로 제시하는 단위는 경제민주화본부, 송태경 실장님인 것 같습니다. 오직 대안과 실천으로 말하자는 송태경 실장님의 절절한 호소가 당을 살리는 유일한 길로 여겨집니다.


6. 진실한 당을 보고 싶습니다

분당을 해도 좋고 안해도 좋습니다.
제발 진실한 당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모와 협잡이 난무하는 당이 아니라, 음해와 불관용이 판치는 당이 아니라, 인간성을 갉아먹는 적대의식이 아니라, 진실성이 생명처럼 자리잡는 당을 보고 싶습니다.

분당을 고민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진지하게 분당을 고민해 주십시오
분당을 반대하시는 분들은 정말로 철저하게 고민해 주십시오
대충 봉합하거나 화근을 묻어둔 채 냉소적 현실논리로 흘러가서 그나마 남아있는 진실성마저 질식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정말로 민중행복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가
그런 실현을 위한 정당이 될 수 있는가
오직 그 실천앞에 용광로에 녹아드는 결의를 가질 수 있는가
과연 진보정당으로 정권을 창출하는 새 전략앞에서 낡은 정파들의
논리와 정파간 구도는 혁파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역사는 흘러가는데 언제까지나 엔엘 피디의 구도에 사로잡혀야 있어야 하는가

한국의 모든 정파는 작든 크든 모두 실천적 파산을 겪은 것 아닙니까
제발 모든 정파가 새로 태어나서
참신하고 새로운 진실을 보여주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어느 정파보다도 자주파가 선도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주류적 책임감 아닙니까?

얼마전 어느 후배가 타정파 당원들을 향해 종파주의 어쩌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열정이 넘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런 경향이 자주파 지도부의 경향이 아니길 바랍니다
만약 진정으로 그리 생각한다면 솔직히 의사를 표명하고 분당을 고민하든 말든 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자주파는 타정파탓을 하는 편협함으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먼저 혁신하기, 먼저 반성하기, 먼저 책임지기...진실한 혁신과 실천으로 민주노동당을 거대한 희망의 용광로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십시오. 아마도 저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당원들의
최후의 기대가 될 듯 합니다.

이대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철저한 비관이 필요한 때입니다.

스스로는 그런 위대한 혁신에 동참할 용기와 자신이 없으면서도
뻔뻔하게 한 마디 올렸습니다. 더 이상 오버하지 않고 자숙하며
살겠습니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7/12/31 22:19 2007/12/31 22:19
,
Response
No Trackback , 4 Comments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28

원래 잘 안퍼오는 데...퍼야겠다..

어제 노회찬의원의 연설中...

원본링크 : http://blog.naver.com/ahn7917/80023681964
#1

박씨는 암소 한마리를 먹고 있고
이씨는 짜장면을 먹고 있어
돈많은 박씨가 암소를 잡아먹고 돈적은 이씨가 짜장면을 먹는다고 누가 뭐라 그러진 않아
근데 옆에 김씨가 돈없어 굶고 있단 말이지

어떻할까?
모두 모여서 짬뽕을 먹어야 된다는 소리가 아니라.
이씨는 걍 짜장면 먹고
박씨가 쇠고기 한 점 떼주어 그걸로 라면이라도 먹게 하자는 것.

이게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부유세입니다.

#2

고등학교는 당연 무상교육이며
대학도 합격만 하면 국가에서 모든 비용을 내는 것.

이게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무상교육입니다.

선진국이니 가능하다구요?
국민소득 900불의 스리랑카에서도 하는일을
1,4000불의 우리가 못할리가 없습니다.

기회균등이란
배움에 있어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실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건 당연하지만
돈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똑같이 모든이에게 배움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지
돈이 많아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건 결코 옳지 못한것입니다.

#3

돈이 많아서 비싼차를 사는데 뭐라 할 수 있습니까?
돈이 없어 다이아몬드반지를 못낀다고 불평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아 죽을수 밖에 없다면 이거야말로 큰일입니다.
최소한 돈이 없어 치료를 못받는 일은 없게 하는 것.

이게 민주노동당이 말하는 무상의료입니다.

현재 수도요금을 만원 정도 내셨다면
그 수돗물의 원가는 세배인 3만원정도 입니다.
이런 수돗물을 시장원리에 따라 민영화를 한다면
최고급 20만원 짜리를 공급하는 ○○회사
10만원 미만의 중저가 XX수돗물
최저가라도 지금 원가이상일 ㅁㅁ회사의 물을 마셔야 할 겁니다.
근근히 만원으로 물을 해결하던 사람들이
3만원이 없어 물을 못쓰거나 목먹어 죽게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사회엔 이런것들이 도처에 많습니다. 국가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이런것이구요.

#4

비정규직이 뭘까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하루8시간이 아닌 파트타임으로 네시간. 세시간등을 근무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것이고 그렇더라도 정규직보다 임금을 차별 받아서는 안되는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노동력을 값싸게 살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똑같은 물건이 1000원, 500원짜리가 있는데 1000원을 주고 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회양극화에 관해 6년전 민주노동당이 출범 할 때
20:80이라고 말하던 것이 현재 10:90의 비율로 늘어났습니다.
20의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되고 80의 가난은 더욱 더 늘어났다는 말입니다.

#5

열린우리당, 꼭 한미FTA를 체결하고 쌀시장을 지켜내겠다고 합니다.
쌀뿐 아니라 경쟁력떨어지는 공산품들도 모두 먹힐 판에 이런 모순적인 말을 믿을수 있습니까?

내 처녀성을 지켜주면 결혼도 해주고 아이도 낳아주겠다는 말과 다름없는데 말이지요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6/04/21 13:12 2006/04/21 13:12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02

과거 양대 노총이 일자리나누기에 앞장선 것에 비난의 화살을 날리던 좆선일보가 돌연히 일자리 나누기 운동에 동참했다.

링크: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603/200603200655.html

[사설] 프랑스 雇傭法 진통은 한국의 反面교사다

주말인 18일 프랑스 전국 160개 도시에서 150만명이 참가하는 勞노·學학 연대 시위가 벌어졌다. 전국 84개 대학 중 60여 개 대학이 시위에 참여했고 ‘68년 사태’ 이후 38년 만에 소르본大대 안에선 학생들이 連坐연좌 농성을 했다. 이들은 26세 미만 젊은이들을 채용하고 나서 첫 2년 이내에는 자유롭게 解雇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최초고용계약법(CPE)의 철회를 요구했다.

지난해 프랑스의 26세 미만 청년 실업률은 23%다. 영국 11%, 미국 12%의 두 배다. 특히 저소득 移民者이민자 주거지역의 청년 실업률은 40~50%에 이른다. 정부가 최초고용계약법을 추진한 것은 고용주들에게 “2년 내에는 해고해도 좋으니 일단 젊은이들을 한번 써보라”고 권하는 취지다. 그런데 노조와 대학생들은 “CPE는 청년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정반대로 해석하고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의 청년 실업률이 높은 것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때문이다. 일단 취업한 사람은 평생 ‘철밥통’이 보장되지만 신규 취업자는 정규 직장을 구하기가 별따기만큼 어렵다. 프랑스는 미국보다 일자리 구하기가 5배나 어려운 반면, 직장인이 해고될 확률은 5분의 1 정도라고 영국 이코노미스트誌지는 분석했다. 이미 취업한 철밥통들이 신규 채용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기업이 新規신규 채용인원의 70%를 비정규직으로 뽑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정규직의 절반가량은 한 달 안에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한다. 노동자 안에서 기득권자들이 非비기득권자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뒤늦게 CPE를 도입하고 독일이 이에 앞서 노동시장 柔軟化유연화를 위한 ‘아젠다 2010’을 추진한 것은 ‘高費用고비용 노동·福祉복지’ 모형을 고집해 왔던 유럽대륙 국가들이 “살 길은 英영·美미식 자유주의 경제체제밖에 없다”고 고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정규직 근로자 보호 문제를 놓고 몇 년째 씨름하고 있는 우리도 프랑스의 때늦은 진통을 눈여겨봐야 한다.

좆선일보...

이에 주장 하기에 앞서 좆선일보는 언론계 기득권이자 철밥통들인 좆선 논설우원, 편집장, 사회/정치/경제부 기자들의 비정규직화로 일자리 나누기에 동참하자!!

내 시바 비정규직에 대한 여러 개소리는 들어봤어도, 일자리 나누기 차원의 비정규직이라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첨듣는다. 차라리 좆선은 문단에 등단하는 것이 어떨지...

그에 비해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6/03/21 12:12 2006/03/21 12:12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00

사립학교법 제정에서의 문제는 사학재단들의 이상한 생각중 하나인, "재단이사장, 혹은 그주변인들의 학교의 사유화"가 사학의 당연한 충분조건인냥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한나라당은 그런 반 상식적인 집단에 힘을 몰아주고 있는 바보짓을 하고 있는것이다. 한마디로 잘하고 있는 것이다. ^^
이에 홍세화선생님의 이번 편지는 몇백번 맞는 얘기일수 밖에 없다. 앞단 사진의 피곤함에 젖어 터진 입술이 선생님이 아직도 많이 피곤하신가 보구나 걱정스럽기만 하다. 겨우 구독했던 한겨레신문이 아버지의 독단으로 끊기고 다시 조선일보로 회귀했던것에 대해 선생님께 죄송하기만한데, 언젠가 만회할수 있겠지..

원문 : http://wnetwork.hani.co.kr/hongsh/391

젊은 벗에게,

마침내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아직 미흡한 점이 남아 있긴 하지만, 한겨레신문에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라>는 제목의 칼럼을 두 차례나 썼던 저로선 더욱 오랜만에 들어보는 즐거운 소식이었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어 이사 수의 1/4 이상을 학교운영위, 대학평의원회가 2배수 추천한 외부인사 중 선임하게 된 반면에, 친인척의 이사 수를 전체 이사의 1/4로 제한하고 이사장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을 교장으로 임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 독립된 공인회계사나 회계법인의 감사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감사 한 명은 학교운영위나 대학평의원회에서 추천하는 개방형 감사를 두게 됐습니다.

그 동안 사학재단들은 전교조가 학교를 장악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면서 개방형 이사제에 반대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학교운영위에서 전교조 조합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미만이고 그나마 학교운영위에서 2배수를 추천하게 되어 있으므로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어도 전교조 조합원이 이사에 선임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그들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주장이었고 몰상식과 뻔뻔함의 발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학재단이 실제로 두려워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투명성이라는 빛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중동과 함께 ‘전교조 죽이기’에 나선 것은 급진적인 전교조를 내세우면서 그들의 밀실에 빛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개정된 법안은 실상 상식의 복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사학재단은 한 패가 되어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립학교법인협의회는 학교폐쇄와 신입생 배정 거부 등을 논의 중이라고 하며, 위헌 여부가 날 때까지 불복종 운동을 벌일 방침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순교를 각오한 투쟁”까지 말하고 있는데, 솔로몬의 지혜를 조금만 빌려와도 그들에게 교육은 목적이 아니라 사익추구의 수단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무척 집요하고 열성을 부립니다.

볼테르는 광신자들이 열성을 부리는 것에 비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에 개탄했습니다만, 이 땅의 사익추구집단이 보여주는 억지와 집요함 그리고 열성스러움은 대단한데, 지혜로운 사람들은 너무 점잖고 열의를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사익추구집단만큼 열의와 집요함을 보이는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또 사익추구집단들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선 누구든 함께 결합하는데 비해 사회정의와 공공성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은 자칫 연대보다는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가 돌이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한겨레신문 창간주주이며 독자라고 밝힌 두 분에게서 한겨레신문을 끊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한 분은 황우석 교수에 줄기세포 연구에 관한 의혹을 기사화한 한겨레가 용서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했고, 전교조 교사라고 밝힌 다른 한 분은 교원평가제에 대한 한겨레 논조가 아주 틀렸다고 했습니다. 아직 답신을 보내지 못하고 있는데, 저도 한겨레 논조에 100%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익추구집단은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든 합집합으로 결합하는데 반해, 공공성과 사회정의를 고민하는 분들은, 서로 연대하고 힘을 합쳐야 함에도, 지나치게 의견의 동일성을 요구함으로써 결국엔 모두 교집합으로 분리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를 모색하는 젊은 벗은 부디 이 점에 관해 성찰하기를 바랍니다.

한겨레 제2창간운동본부 독자배가추진단장 홍세화 드림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5/12/15 15:26 2005/12/15 15:26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91

열흘전 이 자리에선 두 노동자의 합동 장례식이 치러졌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도, 대자보에도, 유인물에도 천연덕스럽게 웃고 있으나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들.

김 주익. 41살.
공고를 졸업하고 스무살의 나이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21년.
한진중공업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습니다.
병역의무도 거기서 마치고 거기서 장가들어 12살 10살 7살 세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곽 재규. 48살.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살의 나이로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28년.
한진중공업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습니다.
병역의무도 거기서 마치고 거기서 장가들어 17살 15살 두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얼마나 더 성실해야 했습니까? 얼마나 더 근면해야 했습니까?

장례식도 치렀고 20년 해묵은 숙원사업들도 한꺼번에 쟁취를 했으니 이젠 잊어야 하는데,벌떡 벌떡 일어나 앉는 새벽은 너무나 길고, 늘 다니는 길에서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도 합니다.

아직은 아무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키가 큰 사람만 봐도 숨이 턱 막힙니다. 아직은 밥을 먹는 일도, 보일러 스위치를 누르는 일도, 양말을 신는 일도 참 많이 죄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준엽이 혜민이 준하 경민이 영욱이 그만한 또래의 아이들을 보는 일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아이들.
제 아버지의 관을 덮은 국화꽃잎을 떼어 누나에게 갖다주며 웃던 일곱 살 준하.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온 몸이 아프도록 울었다던 열 일곱살 경민이.

네이스엔 그 아이들의 아버지의 부재가 자살로 입력되겠지요.
다섯 아이를 한꺼번에 쪼르르 상주로 만들었던 자본에 대한 얘기 따위는 없을 겁니다.
일 안하고도 한꺼번에 수십억씩 챙겨가는 자본이, 한달 만원 짜리를 노동귀족이라 부르던 세상에서, 아빠가 왜 크레인엘 올라야 했는지, 아빠가 사주마고 약속했던 휠리스를 왜 다른 사람들이 사주는지, 그들의 눈이 왜 한결같이 붉은 강물로 출렁거렸는지, 네이스는 설명해주지 않겠지요.


신 용길 동지의 목숨이 참교육의 깃발로 나부낀 지 15년.
그 깃발이 그토록 저를 설레게 했던 건, 참교육이란 담탱이 꼰대들과 같은 계급으로 같은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더 이상 스스로의 계급이 부끄럽지 않을 거란 감격 때문이었습니다.


제 나이 열여덟. 실밥을 따는 쪽가위에 허구헌 날 씹히는 일보다, 불량을 냈다고 반장한테 귀싸대기를 예사로 맞는 일보다 더 힘들었던 건 제가 공순이가 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옷을, 내가 만든 신발을 세상 사람들이 입고 신고 다니는 게 자랑스러워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실이 들통날까 봐 퇴근할 땐 눈썹에 머리카락에 하얗게 앉은 먼지와 실밥을 테이프로 쩍쩍 떼어내고야 세상에 섞일 수 있었습니다. 실크 원단을 찝어 먹고 나면 조장은 늘 같은 소릴 했었습니다. '니 한달 월급으로도 이 옷을 못 산다'고.

내 손으로 그런 옷을 하루에도 수천장을 생산하는데 한달을 일하고도 그 옷 한 장을 못 산다는 그 말을 참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시절. 아니 이해하려는 불순한 생각을 품어서는 안되던 시절. 소등시간이 지난 깜깜한 방을 기어 나와 기숙사 옥상 여기저기서 가로등 불빛아래 고향에 편지를 쓰던 아이들.

"어머니 아버지 걱정 마세요. 저는 사장님의 보살핌으로 잘 지내고 있답니다. 내후년 쯤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꼭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습니다. 발신자도 수신자도 다르건만 군사우편처럼 내용이 비슷하던 편지들. 태자. 희야라는 이름 대신 단추구멍으로 오바로꾸로 불리던 아이들. 톨루엔이나 신나를 물처럼 첨벙거리고 살면서 생리를 안 한다고 좋아라 하던 열 일곱 열 여덟살 짜리 아이들. 남들은 너무 귀엽다는 애기들 신발을 보면서도 그 작은 신발을 박아 돌릴 때 손가락에 박히던 미싱바늘의 섬뜩함이 먼저 떠오르던 아이들.

스물한살.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들어가서 아저씨들에게 제일 먼저 배운 일은 이태리 타올로도 지워지지 않던,손에 새까맣게 낀 기름때를 시멘트 바닥에 벅벅 문질러 지우던 일이었습니다. '때는 그때 그때 지아야제 나뚜먼 펭생 가는기라' 논물이 밴 뒷꿈치를 우물가에서 그렇게 문질러대던 내 아버지가 했던 일. 새까만 손이 자랑스러운 건 3월 10일 근로자의 날 뿐이었고,364일은 그 손이 부끄러웠습니다.

일요일에도 어김이 없던 새벽 4시 45분. 자명종 소리 만큼이나 큰 소리로 엉엉 울고 싶을 만큼 힘들고 고되던 노동보다 더 견딜 수 없었던 건 오늘도 내일도 난 여기서 한발짝도 벗어나질 못할 거라는 깊은 절망이었습니다. 금방까지도 옆에서 홀다를 땡겨주던 아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뒤집힌 채 바다위에 동동 떠다니던,그 아저씨의 이름이 선명하던 화이바보다 더 소름이 끼쳤던 건 안전과에 불려가 목격자 진술서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철판끼리 부딪치는 소리에 돌아보니 하반신이 동강났던 아저씨.

그때까지 살아서 날 쳐다보던 아저씨의 눈빛보다 더 무서웠던 건 제가 그런 사실들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이런데서 일한다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거였습니다.

내가 일을 해야 그 큰배가 만들어지고, 그 배가 만들어짐으로 이 세상의 모든 부가 생산된다는 사실을 스무살이 넘도록 전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었습니다.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제자보다 지하철을 생산하는 제자가 자랑스러웠던 적이 있으십니까?
변호사가 된 제자보다 이 공사장에서 함마를 휘두르는 제자에게 보람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스스로 노동자계급이 아니고서야 노동자계급이 자랑스럽다고 가르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스스로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못하고서야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믿음이 신념이 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지난 5월. 솥발산 무덤들마저 초록으로 넘실거리던 날.
최복남이라는 노동자의 무덤은 황토흙이 벌건 채 그의 두아들의 흙장난 놀이터가 돼있었습니다. 평소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조차 없던 무능하고 가난한 애비는 죽어서야 그렇게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생겼던 겝니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의 정당성을 알리는 선전전을 하다가 어떤 젊은이와 시비가 붙었습니다. 왜 유인물을 나눠줘서 차가 밀리게 하냐는 게 시비의 이유였습니다. 시비의 와중에 그 젊은이는 최복남을 매단 채 질주를 했고, 최복남은 살기위해 평생을 버둥거리던 그 길바닥에서 즉사를 했습니다.


한 노동자의 절규에 귀 기울이기 보다, 일곱살 여섯 살 연년생 아이들을 둔 가장의 생존보다 우선했던,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에 대한 적대감.

작년 서울의 어느 병원에선 20년 넘게 일하던 식당에서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50대 아줌마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그 투쟁을 막아선 건 용역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아주머니가 기절을 하고 나중에 들은 사연은, 자기에게 무수한 발길질과 주먹질을 해대던 용역의 얼굴을 어느 순간 올려다보니 자기 아들이더랍니다. 이십몇년 그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새벽부터 버둥거렸을 홀어미의 눈물과 노동이, 사회불만 세력이 필수공익사업장을 장악하려는 음모가 되는 세상에서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같은 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밥이 되고 옷이 되고 가방이 되고 휴대폰이 되고, 그리고 아이들이 장차 살아가게 될 계급에 대한 희망과 예의를 앞서가며 따르게 하는 일. 참교육은 그런거라고 전 믿습니다.


애초에 고무신을 신은 적이 없었던 노무현씨에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고 자꾸 뭐라할 게 아니라, 온종일 고무장화를 벗을 틈이 없는 급식조리보조원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일. 전 그게 참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영웅이 나타나 세상을 바꿔줄 거라고 믿는다면,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이어졌던 오류는 김근태로 추미애로 또다시 반복될 뿐입니다.
우리가 정치의 교육의 세상의 주인이 됩시다!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농민 장애 여성 그들과 하나가 됩시다!


전교조 부산지부 동지들.
준엽이.. 혜민이... 준하.... 경민이..... 영욱이.......그 아이들을.........잘 부탁합니다.


-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4/09/20 14:38 2004/09/20 14:3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29

작년 11월 9일에 했던 노동자 대회때 들었던...
눈물 가득하게 들었던 김진숙 지도우원의 추모사다.

간만에 읽었는데 가슴이 찡해진다. 아직도 가끔씩 다시 본다.





추도사를 들으며 울고있는 노동자
ⓒ민중의소리 김철수


인간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던 자의 부끄러움.
그걸 깨우쳐준 전태일. 그분을 열사라고 부르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분의 죽음에 책임질 일이 없었고, 자책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냥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때때로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다짐들을 담아 떠올릴 수 있는 바위 같고 산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박창수와 11년, 김주익과 19년, 재규 형님과 15년. 군사독재에 치를 떨며 숨죽여 오르내리던 용두산 공원이 있고, 민주노조 세워보자고 새우깡 안주를 놓고 밤을 새우던 다대포 바다가 있습니다.

밤새 등사기로 밀어낸 유인물을 테이프로 감은 채 정문을 통과해야 했던 안전화가 있고 화이바가 있습니다. 번갈아 가며 면회를 오고가던 감방이 있고, 한진노조 때문에 세배로 늘려야 했던 영도경찰서가 있습니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싸다준 김밥을 최루가스에 비벼먹던 6월 항쟁의 거리가 있고, 멸공의 횃불아래를 부르며 침묵의 공장을 해방의 광장으로 만들어가던 대투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너무 말이 없어 깝깝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재단하며 때때로 미워하기도 했던 애증의 세월들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주익씨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그 큰손을 붙잡고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는데 이제 어디에다 그 얘기들을 다 해야 합니까?

85호 크레인의 달력은 129일의 시작 6월11일에 동그라미가 쳐진 채 멈춰지고, 그 칠흑 같은 밤으로부터 비는 참 그악스럽게도 내렸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늦은 밤, 011-554-1469.
이제 다시는 받을 일도, 걸 일도 없는 전화번호 하나.
저녁은 먹었어요?
예….
비가 많이 와서 어떡해요?
비야 맨 날 오는데요 뭐….
전 그때까지만 해도 용건이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용건이 없는 전화는 겉도는 얘기가 몇 마디 더 이어지다 그럼 수고하시라는 잔인한 인사를 그에게 남긴 채 끊어졌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황소 같은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곰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단 한 발짝도 내려설 수 없는, 땅보다는 하늘이 가까운 그 꼭대기가 얼마나 아득했을까.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을까. 봉다리에 매달아 크레인까지 밥을 끌어올리던 그 밧줄에 목을 걸어야 했던 그 처절한 절망을 이제야 헤아리는 이딴 게 무슨 동지입니까.
죽을 각오로 올라갔으나 그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9월 9일 유서 한 통을 써놓고 기다리고, 10월14일 또 한 통을 서놓고 목이 메이게 간절하게 기다려보고. 단식도 해보고, 삭발도 해보고, 수 십 번 집회도 해보고, 태풍도 혼자 견디고, 추석도 혼자 견디고, 아버지 제사도 혼자 견디고, 이제 더는 올라갈 곳도 없는데,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해볼 것도 없었던 그 처절했을 절망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백만 번을 생각하고 천만 번을 생각해도 아까워서, 사무치게 아까워서 미치겠습니다.

다른 애들 다 가진 힐리스 한 켤레 사들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애비.
아빠 얼굴을 몇 개나 그려놓고 일자리 구해줄 테니 돌아오라고 했던 10살짜리 딸내미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그 딸내미를 어루만지고 안아보고 싶었을 애비.

129일의 아빠의 부재로도 눈에 띄게 기가 죽었다는 일곱 살 막내가 이제는 영영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애비가, 그 아이들을 그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기어이 상주로 만드는 세상.

10월17일 그 날 이후 크레인과 눈이 마주칠까봐 하늘을 올려다 볼 수조차 없는 아저씨들. 너나 없이 '미안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정작 미안한 건 우리가 아닌데도 그 한마디가 인사가 돼버린 고통의 시간들.

재규 형님도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때 "형님이 뭔 죄가 있습니까" 그 한마디를 못한 게 또 이렇게 남습니다. 재규 형님은 그렇게라도 지회장을 따라가서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
다. 저들은 유서가 없으니 단순 추락사랍니다.

김주익 지회장이 빤히 내려다보는 4도크에 피로 써내려 간 유서.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있어야 합니까? 바로 그 4도크에 매어있던 배를 새벽에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빼내가고, 배가 출렁이던 자리엔 조합원들의 한숨과 패배감이 넘실거리고, 그 넓은 도크바닥을 종이 삼아 몸 뚱아리를 붓 삼아 써내려 간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필요합니까? 안기부와 한진자본이 죽인 박창수 위원장은 유서가 없어 13년 동안 의문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답니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 문재인, 그들은 민주화 됐습니다. 도둑놈도 살인마도 그들이 집권하는 순간 민주화가 완성되는 거 한 두번 봤습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누가 지 입으로 내 독재자요 합디까. 누가 내가 도둑놈이요 내가 살인마요 합디까. 도둑놈도 정의사회 구현이요, 도둑놈의 애비들도 위대한 문민의 정부요, 국민의 정부였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아이들 차례입니다.
집이 강남도 아니고, 수백만원짜리 과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노동자의 아이들이 어차피 실업자 아니면 비정규직으로나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차례차례 옥상에서 뛰어내릴 차롑니다. 영등포 경찰서장 짝 날까봐 내놓고 말은 못해도, 아이들의 잇따른 죽음엔 전교조의 기획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입들이 한둘이 아닐겁니다.

강남의 집 값이 1주일에 7억이 오르고, 야당이 한 자본에게서만 100억을 받고, 철도에서, 부안에서, 전교조에서 정부가 했던 약속들이 손바닥처럼 뒤집어지고, 어느 것 하나 정상인 게 없고 어느 구석 하나 상식이 통하는 게 없는데도 용케도 정권이 유지되는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행태가 되풀이되는 유일한 힘.

경상도에선 자본가도 1번 노동자도 2번, 전라도에선 자본가도 2번 농민도 2번. 이 희한한 연대가 유지되는 한 아무리 피터지게 싸워도 세상은 안바뀝니다.

노동자가 죽고, 농민이 죽고, 노점상이 죽고, 장애인이 죽고, 아이들이 죽어도, 그때마다 다시는 울지 말자 수백 번을 맹세해도,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죽었으면, 그 아까운 생목숨들을 그만큼 바쳤으면 영남대승론, 호남필승론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필승론이 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제발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자금을 쌓아놓기 위해 빌라 한 채가 통째로 금고가 되는 시대에, 한푼 두푼 모았던 돼지저금통이 아직도 감개무량하십니까? 자본가에게서 나온 검은 돈으로 정권을 사는 대통령이 노동자 편이기를 바라셨습니까? 조중동의 입이 곧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셨습니까? 효리에게 알몸을 보여달라는 스포츠신문들을 돈 내고 사보면서 세상이 바뀌길 바라셨습니까?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라이온스를 응원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줄줄이 개죽음을 당해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이기는 날 축배를 드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는 저들의 손바닥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남호만 나쁜 놈입니까? 김문기만 죽일 놈입니까? 착한 자본가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자들만이, 남의 눈에서 쏟아지는 피눈물을 달게 마시는 자만이 자본가가 될 수 있고, 그게 자본주의입니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게 애국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핵폐기장 반대, 파병반대를 위해 촛불을 밝혀드는 게 애국이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게 단결이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게 계급적 단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해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영남·호남의 연대가 아니라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 그들과의 연대가 진정한 연대입니다.
철도 동지들, 화물연대 동지들, 쓰라린 만큼만 다시 일어섭시다. 한진중공업 동지들, 세원테크 동지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동지들. 우리가 흘린 이 피눈물만큼만, 꼭 그만큼만 다시 갚아 줍시다.

전국에서 오신 수많은 동지들. 그리고 하도 오래 싸워서 이제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또다시 맨몸으로 이 시린 겨울을 맞설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 작은 노조라서 신문에 한 줄 안나고, 집회 한번 뽄때나게 안되던 수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

돈 없고 권력 없는 노동자들이 몸뚱이로 써내려 왔던 피눈물의 역사. 목숨으로 노동해방 횃불을 밝혀왔던 노동자들의 처절한 역사. 그 역사의 승리를 위해 이제는 검은 머리띠말고 노동해방의 붉은 머리띠를 다시 맵시다. 숨쉬는 것조차 죄스럽고, 지금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기필코 살아서 단결 투쟁 노동해방으로 총진군합시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4/08/09 17:27 2004/08/09 17:27
Response
A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23

resize

숭실대 홈페이지

오늘 학교 한 후배랑 그런데로 사회에 대해 공부하다가 녀석이 궁금한게 있다며 물어왔다.

녀석은 학교(숭실대)가 현재 등록금투쟁상태인데, 학교가 재건 50주년을 기념한다며 63빌딩에서 했던 행사에 학생회친구들이 난립했는데, 그건 그 학생회 친구들이 잘못했다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등투와 학교 재건 50주년행사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이유였다.
그리고 학교의 한 교수가 이런 말도 했더란다. '등록금투쟁해서 몇만원 나온거 나와봤자.. 너희들 술먹지 않느냐? 그럴려면 학교에 기부하라'는 것이란다.

사실 그 나름대로 몇개월 같이 공부했지만 나이어림에 후배넘의 철없음을 다독이고 가르치면 된다지만, 그 교수의 말은 절대로 그냥 넘어갈수 없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나이는 괜히 잡수시는 게 아니다.

본인이 94년도 학교를 다닐때 등록금 160만원정도인데 현재 대략 400만원 가까이 된다니 기억 저편의 수학공식의 꺼내서 계산해보니 10년동안 대략 매년 약 8~9%정도의 등록금 인상율이 되는 모양이다. (98년도에는 IMF라 동결했다 했으니 10%정도 되는 모양이다.)

97년 IMF이후 평균 실질 물가상승율은 7~9%로 알고 있다. 허나 3년간의 몇부류의 노동자의 임근상승률은 12~8%를 달성했지만, 비정규직등이 확대된 2000년도에는 전체 노동자의 임금 상승율은 1.9~1.8%였다.(참조 : http://klsi.org/webzine/article_view.asp?no=45 ) 그리고 4년이 지난뒤 현재 그렇게 임금인상이 이뤄지지 못했음을 누구라도 느낀다.

매년 총학생회는 봄마다 등록금 투쟁을 했지만, 1~2%깍는 수준이었고, 되돌려 받는 돈은 다시 부모님에게 돌아가기 보다는 대부분이 그들의 유흥비가 되었음도 사실이다. 어짜피 1~2% 깍으면 사실 돌려받는 등록금은 별루 되지 않는다.
허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것은 1~2%의 등록금을 깍는 것조차도 그나마 등록금이 많이 오르게 하지 못한 요인임을 알아야 한다. 매년 5%씩 오른 등록금과 매년 7%씩 오른 등록금의 차이는 10년후에 엄청나기 때문이다. 10년전 등록금을 160이라 했을때 5%로 10년후의 등록금은 약 260만원, 7%는 315만원으로 50만원이나 차이 나기 때문이다. 만일 매년 10%정도씩 인상했다면, 원금에 대해서 2.5배 차이나고, 5%에 비해 150만원 차이나는 거의 두배의 415만원으로 엄청난 수치가 된다.

그나마 그 돈이라도 받아서 술이라도 처먹었으니 등록금의 400~500완성이 10년이 걸렸던 게다. 게다가 실질 전체 노동자의 임금인상률이 2%미만이라면 3,4년후에는 한달에 100만원 6개월 꼬박 저축할때, 겨우 한학기 등록금으로 나간다는 얘기다. 그러니 겨우 술값운운하며, 등록금투쟁을 하지 말라는 그 교수의 간교함은 여지 없이 들어난다.

그러나 등록금 문제가 물가상승율, 년간의 몇%인상 등의 단순 비례인상의 문제에 있지는 않다. 보통 사립학교같은 경우 학교가 설립자, 혹은 재단의 재산으로 시작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재단 혹은 개인의 사적 소유이기 보다는 사회의 공적 교육기관이고, 그 모든 재산은 재단과 개인의 소유이기 보다는 공적 재산임을 이해해야 한다. 쉽게 말해 대학의 설립취지는 돈벌이나 하자는 것이 아닌, 학문의 탐구와 그 교육이라는 공적 취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학교의 건물등과 각종 재산 불리기는 운영비등으로 쓰여야 할 등록금으로 충당되는 것이 아닌 재단과 학교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인것이다.

등록금 문제의 본질은 여기서 시작한다. 실지로 인사, 예산등의 학교관리의 모든 것을 관할하는 재단측에서, 특히 재단으로써의 필수조건인 재단전입금을 확충하지 않는 것은 재단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며, 그것을 등록금으로 확충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교원단체의 사립학교법 개정 주장의 허구와 문제 : http://www.sahack.or.kr/2043.htm

바로 위의 사학의 공개념에 반하는 글 하나 소개한다. (중등사학쪽의 얘기지만) 사학자본으로 부터 생긴 이익은 사학재단의 것임을 당당히 얘기하는 뻔뻔스러움을 보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학으로 번 돈은 사학재단 특히 사학재단의 이사장(사학재단을 설립한 사람이 보통은 이사장을 맡는다.)을 맡은 사람의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공교육성은 쌍무시하고, 걍 자연스레 사익추구의 장으로 사립학교를 보자는 얘기다. 겨우 그들이 얘기하는 것이 전교조등이 공교육성을 얘기하고, 사학 재산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주의화라며 레드 컴플렉스를 조장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결과 사립학교법 개정의 불가을 얘기한다. 그렇게 많이 배운사람들이 대는 이유라곤 내돈으로 내가 학교를 지었는데 내 재산아니냐.라니 졸라 한심할 뿐이다.

다시 우리 학교문제로 돌아와 당연하게 등록금문제를 두고 5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등록금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의지이며, 학교측의 불성실한 교섭의지와 학교 발전 계획의 부재를 솔직히 시인한것이다.

학교에서는 50주년 기념행사를 했다고 하지만, 그 골자는 10층이상 건물을 몇채 짓고 서울시내의 10위권 순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물 짓기 위해 등록금만 인상하는 학교가 결코 10위권에 들지는 의문이다.

또 50주년 행사가 학원의 한 주체인 학생들의 의견과 의지를 받아 안고 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냥 50주년 행사를 하는 것을 학생 측이 묵인한다면, 그 학생본인이 등록금문제를 해결할려는 의지가 없다는 얘기다. - 본질이 무엇인가 보라. 50년주년 기념 개발개획의 대부분이 돈이 필요한 얘기라는 것이고, 재단전입금이 없거나, 적은 우리학교의 경우에는 등록금으로 충당하겠다는 것뿐이지 않는가?

노조가 파업투쟁을 할때, 파업을 하는 이유는 생산을 중단하고, 자본가에게 최대의 타격을 주기 위해서이다. 노동자가 자신 스스로의 노동력을 멈춤으로써 협상테이블로 자본가가 나오게 하는 것은 당연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의 권리(파업의 권리)이다. 그 이외의 방법은 자본가들에게 먹히지 않음은 그전 투쟁의 역사들이 증명한다. 학교에서의 등록금 투쟁의 방법도 마찬가지다. 본관을 점거하고, 휴업을 하는 이유는 학교가 제대로 된 협상을 안한다는 의지이고, 그렇다면은 모든 수단을 다해 학교를 압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생각해 보라. 학교가 압박을 느끼지 않는데 무슨 협상을 하겠는가?

총학생회 게시판을 가보니 -안타깝게도 본인의 과후배이자, 졸업하기 전에 도와줬던- 일명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63빌딩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발언을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되는 모양이다. 바깥의 소란함을 '철없는 행동'으로 비하했다는데, -아무리 봐도, 또한 뒷글이 성실하지 못한 학교를 아쉬워 한데도- 그가 바깥의 이들을 철없는 행동으로 본 -자신의 학우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은- 것은 그만한 등록금 투쟁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함에 있지 않나 싶다.

resize

숭실대학교 총학생회 게시판 :
http://www.yourssu.com/bbs/viewbody.php?page=1&wf_id=freeboard&number=547

등록금 문제, 50주년 행사의 본질을 알았다면, 그들을 비판하고 견인하는 투쟁을 계속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재단의 무책임이 여실없이 들어나는 행사에서의 들러리로써 서있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전의 어느 집회장에서 한 노동자분이 학생들보럼 예비노동자니 등록금투쟁같은거에 신경쓰지 말고, 노동운동이나 잘하라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다. 학생들은 물론 예비노동자이다. 허나 그렇다고 학교를 다니는 사람은 세상과 단절해서 그냥 공부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분단된 나라와 천민 자본주의에서의 교육은 그만큼 더 수탈적이며, 업악적이다. 그것은 교육을 당하는 입장에서는 착취당하는 노동 현장이 아니라도 없는 이의 아픔을 느낄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모순이 계급간의 문제라도 노동현장의 계급으로'만' 세상을 볼수 있다는 얘기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학교의 학생들은 등록금 투쟁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선두가 철학이 비곤한 비운동권총학생회일지라도 계속되는 비판을 해가며, 단결해서 열어나가야 한다. 그것은 단순 등록금 몇푼을 다시 받는 투쟁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사학재단의 불합리와 폭력을 맞서는 것이고, 좀더 발전하여 그 사학재단을 비호해주는 정치권력에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또 그것을 인식하며 투쟁하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첫 시초가 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Writer profile
test

Posted by 엽기민원

2004/05/13 01:38 2004/05/13 01:38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yupmin.com/rss/response/18


블로그 이미지

엽기민원의 옴팡진 공간

- 엽기민원

Notices

Archives

Calendar

«   2012/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225537
Today:
37
Yesterday:
209